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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문학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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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

태백산맥 문학관 건물의 정면이다. 건물 우측에 조정례 태백산맥 문학관이라는 글씨가 쓰여 있고 그 아래에 조정래의 사진이 크게 부착되어 있다.

문학관 건물은 세계적인 건축가 김원씨의 디자인을 바탕으로 과거 아픈 역사를 끄집어내기 위해 벌교읍 제석산의 등줄기를 잘라내고, 2전시실은 공중에 매달려 있는 형상으로 건축되었다. 또한 통일을 염원하는 마음으로 북쪽을 향하고 있다.
 

건축가 ‘김원’

김원(金洹)은 1943년 서울 출생의 건축가로, 서울공대 건축공학과를 나와 김수근 건축연구소에서 수업했으며, 네덜란드 바우센트룸 국제대학원 과정을 수료(Diploma, International Post Graduate Course for Housing & Planning, Bowcentrum, Rotterdam, the Netherlands)했다.
현재 건축환경연구소 ’광장’ 및 도서출판 ’광장’ 대표, 한국 건축가협회 명예이사, 한국 실내건축가협회 명예회장, 김수근 문화재단 이사장 및 부설 서울건축학교 운영위원장, 건국대 건축대학원 겸임교수로 있다.
주요작품으로 한강성당, 명동 쌩뽈 수도원, 국립국악당, 통일연수원, 서울종합촬영소, 광주 가톨릭대학교 등이 있다. 『우리시대의 거울』,『한국 현대건축의 이해』,『빛과 그리고 그림자』,『개발시대의 건축이야기, 그리고 속편 새천년의 환경이야기, 그리고 3편 김원의 사람들이야기』 등 저서가 있으며, 역서로는 『건축예찬』『건축가 없는 건축』『마천루』등이 있다.
환경문제에 대한 깊은 관심으로, 국회 환경포럼의 정책자문위원과 환경문화예술진흥회 및 동강 내셔널트러스트, 그리고 동강을 사랑하는 문화예술인 모임의 공동대표로 있으면서, 2000년에 국무총리실 영월댐 공동조사단 문화분과위원장에 천거되어 영월댐 백지화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등, 환경운동에 있어 신문기고, 방송출연,환경교육, 뿐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몸으로 부딪혀온 실천가로서, 새시대 건축과 도시의 최우선 과제가 환경문제라고 주장한다.
 (새시대의 환경이야기,2001,열화당, 필자소개)  

성 명: 김 원 (KIM, WON)
생년월일: 1943년(癸未年) 3월 10일
본 적: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1가 51번지
출 생: 서울시 북아현동 (京城府 竹添町) 3가 3번지
현 주 소: 서울특별시 종로구 옥인동 46-1
현 재: 대표이사, (주)건축환경연구소 광장서울특별시 종로구 동숭동1-94 광장빌딩6층
Tel : 02-744-8225, /Fax : 02-742-5394
E-MAIL : master@kimwonarch.com
Website : http://www.kimwonarch.com

소설 『태백산맥』을 건축으로 말하다...

조정래 선생에게 설계 제의를 받은 것이 2004년 11월 중순.
이틀 뒤 직원들을 모두 데리고 벌교로 현지답사를 갔다. 벌교에서 태백산맥의 현장들을 둘러 본 느낌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의 길고 어두운 분단의 역사의 터널을 빠져나온 듯 했다. 소설 『태백산맥』은 그것을 영화로 만든 임권택 감독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질곡의 현대사를 거쳐 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데도 새삼 생각이 미쳤다. 작가는 그렇게 묻혀지고 잊혀진 것을 파내고 캐내서 햇빛 밝은 곳으로 드러내보이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작가는 왜 이 작품을 썼을까 하는 본질적인 물음 속에서 “역사의 갈등과 아픔을 해원의 굿판으로 풀고 싶은 의지가 작용했을 것”이라는 나름의 답을 내렸다. 그렇게 자신이 느낀 대로 건물을 만들고 싶었지만 사람들에게 나 자신의 생각이나 감동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았다.

건물은 주어진 언덕 위에 지어진다. 하지만 ‘언덕위의 하얀 집’처럼 건축물이 두드러지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건축가의 기념비가 아니라 문학작품을 기념하고 담아내는 건물이기 때문이다.
소설이 그려낸 분단의 아픔은 산의 등줄기를 잘라내는 아픔과 비견될 것이었다. 건축가가 산자락을 잘라내는 행동은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건물은 우리의 그 아픈 이야기가 묻혀있던 땅 속에 있어야 했다. 그리고 그 등줄기가 잘라지는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했다.
땅을 파내려가 만든 토목옹벽이 건축물의 벽이 되었다. 나머지 한쪽 옹벽에는 소설을 그림으로 그리고자 마음먹었다. 그 엄청난 일을 일랑 이종상선생이 흔쾌히 맡아 주셨다. 그 고마움에 나는 건물 전체를 그림을 향하도록 놓았다.
건축물 앞에는 억새를 심고 뒤편으로는 대나무숲을 두를 생각이었다. 비싼 나무를 옮겨다 심는 수려한 조경은 의미가 없다. 언덕 아래에서 볼 때 건물의 앞면이 억새로 조금 가려지고 바람 속에서 흔들리는 황량한 느낌이면 더 좋겠다. 뒤편의 대나무숲은 무당 소화네 집에 심어져 있는 대나무들의 연장이라 느끼면 될 것이다.

건물은 한 발 물러선 듯, 멀리서 보면 그저 언덕에 유리탑 하나가 서 있어서 밤에는 지하의 억울한 영혼들을 위로하는 불빛이 새어나오는 듯한 탑이 하나 보였으면 했다.
건물의 옥상은 그저 펑퍼짐한 해원굿의 무대다. 산줄기를 잘라낸 상처 자리를 건물로 메꾸며 생겨난 엉성한 흔적이다. 이 위에서는 치유와 화해의 대동놀이가 있어야겠다. 건물 안에 무엇을 많이 채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작가가 현재 살아있는 사람이고 앞으로도 『태백산맥』관련해서 수 많은 평가와 연관작업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두고두고 필요한 부분들을 채워갈 수 있도록, 즉 ‘되어진’것이 아니라 ‘되어가는’ 개념의 공간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 공간에서 중요한 것은 유형의 것 만은 아니다. 이것은 살풀이의 굿판이다. 제한된 빛이 들어오는 텅 빈 홀에 김소희 명창의 구음이 흐르게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도 갖고 있었다. 장난치고 재잘거리는 어린이 수학여행단의 무리도 이 안에 들어서면 잠시 서늘한 전율과 침묵을 느꼈으면 하는 마음으로.

우리는 아직 역사 속 어둠을 다 지나온 게 아니고 통일 이후에도 풀어야 할 문제들은 쌓여 있다. ‘태백산맥 문학관’에는 그러므로 여전히 풀어야 할 숙제가 많은 오늘의 현실을 담아내야 한다는 소망도 남아 있다.
이제 완성된 건물은 사람들이 역사의 어둠과 빛을 한꺼번에 체험하는 장소가 되었으면 한다. 
 <2008. 11. 21. 건축가 김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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